교회의 가르침

2021년 제40회 인권 주일, 제11회 사회 교리 주간 담화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1-11-24 조회수 : 530

제40회 인권 주일, 제11회 사회 교리 주간 담화

 

“정치를 새삼 소중히 여기라고 호소합니다”

(「모든 형제들」, 180항)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제40회 인권 주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타고난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를 깊이 되새기는 날입니다.

인권은 “바로 인간 자체에서 그리고 그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게서”(『간추린 사회 교리』, 153항) 비롯되기에 가장 근본적인 권리입니다. 그러므로 인권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반드시 수호되어야 합니다.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하는 특별한 책임은 정치 공동체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 공동체는 인간 사회 여러 분야의 조화를 모색하면서 궁극적으로 “언제나 더 나은 공동선의 실현을”(사목 헌장 74항)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치 활동의 토대와 목적은 분명 권력도 경제도 이념도 아닙니다. 바로 인간입니다. 정치는 모든 이를 위한 정의와 형제애를 추구하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해야 할 숭고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숭고한 사명을 지닌 정치에 대한 불신은 물론, 정치 자체에 아예 무관심한 경향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렇게 된 큰 원인으로는 일부 정치인들의 권력 남용, 부패, 법 경시, 근거 없는 상호 비방과 흑색선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 무관심이 비롯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우리에게 정치적 각성과 참여를 호소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일부 정치인들의 실수, 부패, 무능 때문에 흔히 정치를 불쾌한 표현으로 여깁니다. …… 그러나 정치 없이 우리 세상이 돌아갈 수 있습니까? 올바른 정치 없이 보편적 형제애와 사회 평화를 향한 효과적인 발전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모든 형제들」, 176항).

그렇습니다. 우리의 안타까운 정치 현실에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실망을 넘어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더 좋은 정치를 늘 추구하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정치는 인간 존엄의 진리를 실현하는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지만,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합니다”(사목 헌장 76항). 그러므로 공동선을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를 아래와 같이 호소하는 바입니다.

 

첫째, 소수를 위한 소수의 정치는 안 됩니다. 소수를 위한 정치는 반드시 부정과 부패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일반화되어 있는 “민주주의 제도의 가장 심각한 결함 가운데 하나는 도덕 원칙과 사회 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는 정치적인 부패”(『간추린 사회 교리』, 411항)이며, 부패의 대표적인 형태는 “뇌물, 횡령, 권력 남용, 관직 비호”(『DOCAT 무엇을 해야 합니까?』, 194항) 등입니다. 이러한 “부패의 무도한 탐욕은 약자의 미래 계획을 산산조각 내버리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무참히 짓밟아 버립니다”(「자비의 얼굴」, 19항). 그 결과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공정과 정의, 사랑과 평화의 실현을 위하여 참으로 청렴하고 투명한 정치가 필요합니다.

둘째, 통합하고 모으는 바른 정치가 필요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각종 갈등과 분열, 대립 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진영 간의 대립이 극심합니다. 이제 권력을 획득하려고 내 편, 네 편을 갈라놓는 정치는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다름을 무조건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존중하여 그 다름에서 좋은 것과 유효한 것을 찾아내는 정치, 곧 조화를 이루는 정치를 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견해에 귀 기울이며 대화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견해와 실천이 어떠하든 심지어 죄를 지었어도 그보다는 모든 인간의 존엄이 우선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고 가르쳐 줄 수 있는”(「모든 형제들」, 76항), 참으로 좋은 정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는 각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증진시킴으로써 비로소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간추린 사회 교리』, 389항 참조).

셋째, 가난한 이들을 먼저 선택하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본의 이윤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 왔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더욱 변방으로 밀려나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간추린 사회 교리』, 182항)을 강조하였습니다. 정치는 특히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귀담아 잘 들어주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187항).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정책을 결정해야 하며, 가난의 원인이 된 사회적 조건을 바꾸려고 최선을 다하고 그들의 온전한 발전을 촉진해야 합니다(「모든 형제들」, 186항 참조). 이것이 바로 가난한 이들의 무한한 존엄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며 그들을 살리는 사랑의 정치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이러한 우선적 사랑은 가난하지 않은 이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살리는 것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사실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온전히 살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향한 정책과 지원은 언제나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특히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수호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 공동체가 과연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하여 노력”(『간추린 사회 교리』, 388항)하고 있는지를 식별해야 합니다. 정치는 정치인만의 몫이 아닙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하는 정치 공동체를 이루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깊은 관심과 능동적인 참여 그리고 연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프란치스코 교종과 한마음으로 형제자매들에게 “정치를 새삼 소중히 여기라고 호소합니다.”

 

2021년 12월 5일 대림 제2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 선 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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